아트라스콥코 코리아, 한국 경제 성장과 함께 하다
10명이 채 되지 않던 작은 회사에서 출발했던 아트라스콥코 코리아가
42년이 지난 지금 300명이 넘는 직원과 함께
아트라스콥코 그룹의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건설 경제 붐을 넘어 90년대 금융 위기와 다양한 외부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며 성장해 온 아트라스콥코 코리아.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그리고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해 나갈까요?
80s 초기의 아트라스콥코 코리아
1950년대부터 아트라스콥코 장비를 수입하여 판매하던 대리점과 합작하여 아트라스콥코 코리아를 설립하고 사업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던 아트라스콥코 코리아의 초창기입니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져 온 정부의 계획 경제로 인해 건축 중장비 및 컴프레셔의 사용이 늘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아트라스콥코는 1968년도 국내 제1호 고속도로인 경부 고속도로 및 국내 다수의 고속도로와 터널 공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1981년대
Henningsen and Company Ltd.는 아트라스콥코의 첫 공식 대리점으로 1957년부터 아트라스콥코의 건축 중장비를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했습니다. 현지 법인의 필요성이 늘어나며 매출이 급증함에 따라 1981년 아트라스콥코 대리점인 우영 산업과 Atlas Copco Co. Ltd는 합작 투자로 한국 지사인 아트라스콥코 코리아를 설립하였습니다.
1986년대
컴프레셔 장비 수요가 늘어나며 경기도 신갈에 컴프레셔 조립 공장을 설립했습니다. 컴프레셔 라인 업 중 작은 사이즈인 GA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주요 부품은 벨기에 본사에서 수입하였습니다. 조립된 모델은 대리점을 통해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90s 한국 경제와 함께 성장했던 아트라스콥코 코리아
1990년대 한국 경제는 건설 경제 붐이 일며 혁신적인 건설 중장비를 제공하던 아트라스콥코의 매출은 급신장했습니다.
이에 맞춰 아트라스콥코 코리아도 조직을 확장, 개편하며 현재의 모습과 흡사한 조직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IMF 사태라는 어려운 시기로 인해 더 이상 컴프레셔 제조 생산은 진행하지 않고 고객 서비스에 집중하며 다양한 제품을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대
국내의 높은 터널 공사 수요로 인해 한 해 3대의 터널 보링 기계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며 매출이 급성장했습니다. 국내 시장에 비트를 판매하기 위해 89년도에 설립했던 Hamico Bit Co.가 Atlas Copco Manufacturing Korea로 흡수 합병되어 아트라스콥코 제조 한국으로 법인명이 개칭되었습니다.
1995년대
이전까지 총판 개념으로 장비를 판매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와 같은 Division 체제의 조직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압축기 사업부문 내에 무급유식 압축기 사업부(Oil-Free Air), 산업용 압축기 사업부(Industrial Air), 압축기 서비스 사업부(Compressor Technic Service)로 조직의 체계가 변경되었습니다. 특히 같은 해에 Gas and Process Division도 생기게 되며, 본격적으로 조선 해양 산업 고객에게 긴밀한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습니다. 신갈 공장에서는 제품 생산 라인을 확장해 GA 55-75, Z pack PKD 까지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1996년대
서울 경기권의 고객뿐 아니라 부산, 경북권까지 판매처와 서비스 지역을 확장하며 고객과 더 가까이하기 위해 양산에 컴프레셔 서비스 센터를 오픈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컴프레셔 오바훌을 비롯하여 베어링 교체 등 급유식 컴프레셔와 이동식 컴프레셔의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추후 이 곳은 부산과 인근 지역의 영업망 확장을 위해 사무실까지 갖춰지게 됩니다.
2000s 고객과 함께 비즈니스 성장에 힘쓴 확장기
1997년도 한국을 강타한 IMF 사태로 인해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겪었습니다. 아트라스콥코는 고객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비즈니스 성장을 위해 박차를 가했습니다.
2004년대
IMF 사태로 인해 부품 수입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컴프레셔 생산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반면, 대고객 서비스를 향상시키고 더욱 빠른 제품/부품 인도를 위해 경기도 신갈에서 현재의 용인으로 서비스 센터를 이전, 재편합니다.
용인 고객지원센터는 아트라스콥코 코리아의 모든 사업부 서비스를 담당하고 제품 및 부품의 조달과 출고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전문 엔지니어와 장비를 갖춘 용인 고객지원센터는 현재까지 물류 공급과 제품 교육, 서비스 작업, 제품 유지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05년대
아트라스콥코 코리아는 설립 25주년을 맞아 지역사회 공헌을 위해 굿네이버스와 함께 노원지역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노원 좋은이웃 지역 아동센터를 개원했습니다. 이곳에서 방과 후 석식 제공, 학습 지도 및 현장 학습을 통한 교육 지원, 공연 관람 등 문화 지원 사업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국내 사회에 공헌을 시작했습니다.
2007년대
산업용 공구 사업부문은 주요 고객의 위치를 고려하여 사무실을 서초동에서 안양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새로 오픈한 사무실은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트레이닝 센터를 비롯하여 서비스 워크샵도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산업용 공구 사업부문은 눈부시게 성장하여, 2012년까지 매출은 180% 증가하고 직원 수는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2011년대
설립 30주년과 함께 1천 억 매출 달성을 기념하여 전 직원이 함께 사이판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트라스콥코 코리아는 아시아를 넘어 아트라스콥코 그룹 내에서 중요한 시장이자 현지 법인으로 떠올라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대
아트라스콥코 그룹은 광산암반굴착 사업부문을 분사하여 에피록이라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대신 새로운 사업부문인 진공 솔루션 사업부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에드워드, 씨에스케이, 레이볼드 브랜드로 이루어진 진공 솔루션 사업부문으로 인해 한국 시장의 위상이 그룹에서 매우 높아졌습니다.
Now -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아트라스콥코 코리아
설립 당시 9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던 아트라스콥코 코리아가 40주년을 맞은 현재, 약 250명의 직원과 10개의 사무실, 1곳의 공장을 두고 국내에서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군의 고객을 대상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성 향상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